오늘자 (11월 1일) 한겨레신문 과학칼럼, "극한미생물의 극한 적응력"입니다. 살다보니 라디오 방송에 신문까지, 희한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
(참고로 Thermus를 "테르무스"라고 한 것은 한겨레 교열부의 작품.^^ 아마 라틴어 표기법을 따른 모양인데, 아무래도 어색...)
(혹시 저작권 문제가 될까봐 전문 pdf는 안올렸으니까 전문을 보실 분은 위의 링크를 클릭!)
검색을 위해 전문이 필요해서 전문은 접어 놓습니다.
과학칼럼
소설 <쥐라기 공원>을 쓴 마이클 크라이튼은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글쓰기를 가르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흡혈 모기에서 공룡의 디엔에이(DNA)를 추출하고 증폭해, 실제 공룡을 복원하는 상상력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그 소설 속의 디엔에이 증폭 기술인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은 소설이 출판된 지 3년 뒤, 그 발명자 캐리 멀리스에게 노벨화학상을 선사했다. 흥미로운 것은 멀리스 역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소설을 쓰려고 잠시 연구를 떠났다가 돌아온 탕자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중합효소 연쇄반응이라는 기술도 섭씨 70도의 고온에서 최적으로 생육하는 세균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Thermus aquaticus)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고온에서도 제 기능을 하는 디엔에이 중합효소를 생산하는 테르무스 세균은 인류가 달 착륙에 성공했던 1969년 미국 미생물학자 토머스 브록에 의해 발견됐고, 화상을 입기에 충분한 온도에서 미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과학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이론보다 풍부한 법. 2년 뒤 브록은 섭씨 90도가 넘는 온도에서 생육하는 초고온균 ‘술폴로부스 아시도칼다리우스’(Sulfolobus acidocaldarius)를 찾아냈다.
그렇다면 생물이 살 수 있는 최고 온도는 몇 도일까? 현재까지 가장 높은 온도에서 사는 미생물은 미국 매사추세츠대 데릭 러블리 교수팀이 발견한 ‘균주 121’(Strain 121)인데 무려 섭씨 121도에서 최적의 생육을 한다. 121도는 실험실에서 균주를 죽일 때 사용하는 가압멸균기가 작동하는 온도다.
이렇듯 극한환경에서 자라는 미생물들을 극한미생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극한환경이란 인간의 기준일 뿐이다. 뜨거운 심해저 화산이나 온천 지대, 추운 남극과 북극, 고농도 염분이 존재하는 이스라엘 사해, 강산이나 강알칼리가 존재하는 환경 등은 극한미생물들에게 최적의 환경일 뿐이다. 이런 극한미생물들이 생산하는 효소들은 중합효소 연쇄반응 이외에도 식품공업·정밀화학·세제 등 여러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며, 그 유전자원과 생산물질은 생물자원이 날로 중요한 재산이 되는 21세기에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9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2008 국제 극한미생물학회’가 열렸다. 세계 28개국 300여명의 연구자들이 새로운 미생물들을 보고했고 그 효소·유전자·생산물의 쓰임새에 대한 연구를 풍성하게 발표했다. 올해에는 극한미생물을 이용한 바이오연료 개발 연구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셀룰로오스를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생산, 청정기술이라고 일컬어지는 바이오수소 생산, 고온균을 이용한 오일샌드 정유기술 등에서 극한미생물은 특히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됐다.
아직 우리나라에 극한미생물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 한국해양연구원을 중심으로 여러 연구자들이 여러 극한미생물을 분리해냈고 게놈(유전체)을 해독하는 사업도 마무리했다. 대한민국은 신종 세균 발굴에서 세계 1위이며 남·북극에 연구기지를 갖춘 나라다. 이렇게 곳곳에 산재한 연구 인프라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도록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각계의 지원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