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서울경제신문에 "합리적 식품정보의 유통을 위해"하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그냥 평소의 제 생각을 피력할 기회였다고 생각하는데 많이 축약되어 있네요. 아래가 원고 초고인데 대량 편집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원글은 좀 주절주절 길게 쓴 감이 있어서 오히려 잘 된 듯합니다. 신문에 쓰는 글은 간결한 것이 좋지요. 바쁘다고 급하게 대충 썼는데 글은 왜 쓸데없이 길어지는지...
얼마전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씨가 뽑혔다고 한다. 그녀가 TV에 나와서 밀가루, 쌀가루, 설탕, 소금이 들어간 아무것도 아닌 영양죽으로 죽어가는 기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도전을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자신의 돈을 털어 후원금을 보냈다고 들었다. 이렇게 식품이란 삶에 꼭 필요한 영양을 제공한다.
하지만 사회가 발달하고 더 나은 삶을 지향하면서 식품의 영양뿐만 아니라 기호성과 기능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맛집을 찾고, 원조를 찾고, 더 몸에 좋은 것을 찾는다. 그런데 몸에 좋은 기능성만 찾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나쁜 유해성들도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능성에 과장이 있듯이 유해성에도 과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은 별다른 검증과 여과장치 없이 유통되고 있다.
밀가루를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만일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먹어온 쌀밥의 유해성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 수천 년 동안 인류가 먹어온 밀가루가 유해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밀가루가 위험하지 않다고 반론하면 수입밀가루가 위험하다고 한다. 밀가루를 수입하는 경우는 드물고 수입한 밀을 국내에서 제분하기 때문에 사실상 수입밀가루는 거의 없다고 하면 십 수 년 전 수입밀에 농약성분이 과량 검출된 적이 있었다며 수입밀이 문제란다. 수입밀이 실제로 문제가 된 경우가 두 번 있었지만 그나마 한 번은 검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그 이후로 16년이 넘게 기준치 이상 농약이 검출된 경우가 거의 없다고 알려주면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에서 간파한 대로 신뢰가 없으면 우리는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것은 비단 밀가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설탕이 그렇고, 소금이 그렇고, 최근에는 완전식품이라고 일컬어지던 우유마저 그런 대우를 받고 있다. 누가, 어떻게, 얼마나 먹으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고려가 없다. 왜 오랜 기간 별 탈 없이 먹어오던 합법적인 식품들이 건강을 해치는 주적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식품 정보가 유통되는 경로와 신뢰의 문제가 있다.
누구나 매일 먹고 쉽게 대하기 때문일까? 식품을 과학적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때문에 엄밀한 검증 없는 식품 정보들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그런 잘못된 정보를 재생산하는 사람들은 비전문가들만이 아니다. 식품학자는 물론 의사, 한의사, 약사 등도 그 대열에 함께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정보를 수집할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많지만 그 정보를 판단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능력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문제를 더 원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별 문제 아닌 것을 과장하고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부각시켜야 뜰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 문화 속에서 도대체 믿고 먹을 것이 없다는 푸념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몸에 나쁘다는 설탕, 소금, 밀가루를 가지고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낸 한비야씨의 증언을 다시 되새겨보자. 과연 이런 식으로 식품정보가 유통되는 것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것인지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합리적인 식품 정보의 유통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