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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이 괴로워, 개고기 논쟁에 대한 잡설

바이오매니아 2009. 7. 14. 14:36
오늘은 더운 여름 3복 더위의 시작이라는 초복입니다. 흔히 복날은 개와 닭의 수난일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중에서 개고기와 관련해서는 합법화를 주장하는 측과 금지를 주장하는 측이 매우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과학적 사실과 사회적 논쟁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고 합니다. 

1. 초복, 중복, 말복이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보면 복날은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도 한다고 하는데 보통 초복, 중복, 말복 이렇게 3복(伏, 엎드릴 복)이라고 합니다. 그 첫 번째 날인 초복은 하지를 지난 세 번째 경일을 뜻하는데 경일이란 십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십이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중 십간의 경일을 뜻합니다. 중복은 하지를 지난 네 번째 경일로 초복으로부터 10일 후(7월 24일)이고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인 8월 13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24절기는 중국 중국 화북 지방의 기후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더운 때는 말복과 그 이후입니다. 

2. 삼복절식 - 복날엔 개고기? 

흔히 틀리는 말 중에 “육계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육계장이 아니고 육개장이죠. 이걸 기억하는 방법은 개장이 바로 개장국, 즉 개고기를 고아서 먹는 장국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육개장은 개고기를 안먹거나 개고기가 없을 때 그 대신 소고기를 넣고 끓여 만든 장국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과거 우리 선조들에게 개고기는 익숙하다는 의미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이름은 1942년부터 몸 보신에 좋다는 보신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지며 (음식전쟁 문화전쟁, 주영하, p297) 북한에서는 단고기라고 부르는데 2000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했던 남측 대표단이 평양단고기 집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삼복초(三伏初)에는 마늘을 넣고 삶은 개고기를 구장이라 해 먹고 땀을 빼면 더위가 가셔 보신 효과가 있다'는 구절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개장국이 복날에 먹는 음식의 전부는 아니고 “더위를 이겨 건강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삼복절식(三伏節食)에는 육개장, 계삼탕, 개장국, 임자수탕(荏子水湯:깨국), 민어국 등이 있고, 복중의 시식(時食)으로는 칼국수를 닭국물에 끓인 백마자탕, 미역을 넣어 끓인 칼국수, 호박을 섞어 부친 밀전병, 암치지짐, 호박지짐 등이 있다”고 합니다.

3. 개고기는 우리나라만 먹었다? 

사실 개고기를 먹는 나라의 대명사로 우리나라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육식 문화에 대한 훌륭한 보고서인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보면 개고기의 대표국가로 중국이 나옵니다. 그 책에 보면, 중국 외무부 장관이 북경 주재 영국 대사의 스패니얼 암캐를 보고 감탄을 하자 영국 대사는 스패니얼이 새끼를 낳으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중에 새끼 두 마리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이 두사람이 만나서 영국 대사가 “그 강아지들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중국 외무부장관은 “맛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실화는 아님)가 나옵니다.

실제로 개고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고 우리나라, 중국, 일본, 필리핀, 베트남 등의 농경문화권 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독일, 벨기에, 심지어 프랑스에서도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는 일반화되어 있던 현상입니다. 독일에는 20세기 초까지도 개고기 마켓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고기를 먹지 않거나 금했던 풍습이 있었던 곳도 있는데 특히 캐나다의 하레인들과 같이 사냥을 주로 했던 지역의 주민들이나 목축을 하는 이슬람과 유대인들은 개를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은 개를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죠. 이 문제는 지금 개고기를 합법화 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의 해법을 찾는데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고려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4. 개고기의 성분 - 다른 고기와 별로 다를 것은 없다.

개고기에 대한 역사가 오래되었다고는 하나 현재 개고기를 상용화한 나라는 사실 거의 없기 때문에 개고기에 대한 연구는 거의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식품과학회, 식품영양과학회, 식품영양학회 등 우리나라의 큰 학회지들을 검색해봐도 개고기에 대한 논문은 대여섯 편에 불과한데 저자도 모두 같은 분이고 대부분 개고기 역사와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따라서 개고기가 과연 몸에 좋은가 나쁜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식약청 및 일부 논문의 개고기 영양 성분에 대한 보고를 종합해보면 개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지방함량이 조금 높은 편 (약 20%)이고 열량도 약간 높은 편에 속합니다.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다고 하나 oleic acid (18:1)이 40%를 상회하며 단백질 속의 필수 아미노산의 비율도 다른 육류와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영양적인 측면에서 큰 잇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일반적으로 개고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개고기도 돼지고기처럼 기름지지만 여름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과 달리 개고기는 탈나거나 체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개고기를 삶으면 고기가 흐물흐물해지고 국물에 풀어져서 술술 넘어가서 다른 육류보다 덜 질기고 부드러워 소화가 잘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영양학적인 측면에서는 특별히 다른 육류와 차별되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전통적인 약리학적 측면에서는 동의보감, 한약집성방, 본초강목등에서 오장(간장, 심장, 비장-지라, 폐장, 신장)을 편안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돕고 기력을 증진시킨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5. 개고기의 단점?

하지만 그 반대 측에서는 개고기를 섭취하는 것이 실제로 큰 이득이 없으며 오히려 개고기로 인한 선모충 감염이나 광견병 감염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선모충 감염의 문제는 개고기를 통해 옮겨질 수 있다고 국제 학술지에 보고(Parasite. 2001 (2 Suppl):S74-7)가 되기도 했지만 광견병의 경우는 섭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를 도살하는 곳에서 옮을 수 있다는 의미가 더 타당해 보입니다. 

6. 과학은 사회적 논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위의 사실들을 가지고 개고기 합법화 또는 금지 논쟁에 답을 낼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합니다. 앞서 본 것처럼 개고기에 관하여 영양학적으로는 특별히 다른 이점이 없다는 주장도 있고,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이점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비위생적 개고기의 유통이나 그를 통한 감염에 대해서도 그래서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럴 바에 금지하자는 주장도 가능해 집니다. 

저는 여기서 조금 다른 문제, 사회적 논쟁과 합의에 있어서 과학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또는 어느 정도 기여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개고기 논쟁이 이 주제에 그다지 합당한 예는 아닙니다.)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과학은 사실(fact)의 문제를 다루고 그렇기 때문에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순수과학” 또는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더욱 그렇습니다. 자연과학자들의 경우는 언제나 원리 원칙을 중심으로 추론하고 생각하는 연역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원리에 어긋난다 생각하면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나온 데이터 역시 기존의 원리에 갖다 맞추기 위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현실은 이론보다 풍부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현실에 있어서는 때론 우리가 알고 있는 원리에 어긋나는 듯이 보이는 현상들이 보고되고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중에는 아예 잘못인 것도 있지만 새롭게 밝혀지는 원리들도 있습니다. 제가 전공하는 극한미생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것이겠죠. 파스퇴르가 고니목 플라스크를 이용해서 자연발생설의 오류를 증명한 이후에 사람들은 끓는 물에서 생물이 자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120도가 넘는 온도에서 생육하는 미생물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식품학자나 의사선생님들의 경우(특히 한의사 선생님들)는 자연과학자들과는 약간 다른 시각으로 질병을 보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증상" 또는 "현상"을 토대로 원리를 찾아가는 귀납적 사고가 자연과학자보다는 더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자연과학자는 연역적이고 의사선생님은 귀납적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두가지 사고가 대립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게다가 인간의 삶이란 자연의 원리 이외에도 심리, 윤리, 철학, 종교, 문화 등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연 현상, 자연의 원리만이 판단의 근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광우병 논쟁 (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쟁이 더 타당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지만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만능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과정에 놓여있는 불완전한 과학, 또는 지금까지 나온 논문만을 지나치게 신봉하는 것이지요. 물론 "과학은 불완전하다, 고로 과학은 믿을 수 없다."는 논리 2단 높이뛰기를 함부로 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과학적 논증은 철저하게 하되 그 이면의 사회 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다 쓰고 나니 이게 아닌데 싶은데... 이 긴 글을 버리자니 아깝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올립니다. 혜량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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