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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창비, 황석영)

바이오매니아 2000. 10. 17. 00:00
올해 최고의 문제작 하면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오래된 정원>. 책 선전을 겸해서 있었던 5.18 즈음의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그리고 동인문학상 후보작 선정 거부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바로 이 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이자 까뮈의 대부(?) 김화영 선생은, 황석영 선생의 선정 거부 선언 후에도 줄기차게 이 책을 추천했다. 그러고 보면 그럴 것도 같다. 예전 김화영 선생의 글에서 드러나는 그 화려하면서도 실제적인 묘사를 닮아보였으니까 말이다.

황석영 선생의 책을 읽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 <무기의 그늘>, <객지> 정도가 아닐까? 사실 황석영식 글쓰기가 어땠는지 잘 기억 나진 않지만, 이 책 <오래된 정원>은 상당히 독특한 느낌이다. 소위 '황구라' 답지 않다고 느낀 것은 왜일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면 지리산 자락 마을의 오솔길, 그리고 그 주변에 핀 꽃, 그 주변 마을 등을 한 문장이면서도 한 문단 정도의 길이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었지 싶다. 그런데 이 소설은 거의 그런 묘사에 있어서 아주 작심하고 한 듯하다. 이야기를 따라가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지겨운(?)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일 수도 있겠다. 황석영 선생의 12년만의 장편은 당연히 참여적이고 목적 의식이 충만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지만, 한 번 읽어본다면 이 책이 얼마나 서정적인 글인지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은이는 "서사의 결여와 감각주의라는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문학이 풍부한 서사를 지닌 남성풍의 문학으로 거듭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 사실 풍부한 서정성과 정밀한 묘사와는 별도의 또 다른 맛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가 주는 힘이다.

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 하나의 문학 작품을 그럴 수는 없겠지만, 잘 추리면 단편 하나의 분량 정도라고나 할까. 80년 광주를 경험한 한 사내와 그가 도피해서 만난 한 여인, 이 소설은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 사내는 18 년을 감옥에서 살아왔고 그 여인은 감옥 밖에서 살았다. 그러나 결말은 감옥 속에 들어가 있던 사내는 사회로 다시 나와서 자신의 삶을 찾고, 감옥 밖에 살던 여인은 그 사내가 살지 못한 삶을 살다가 홀로 삶을 마감한다. 마치 감옥 밖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감옥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듯이. 그리고 사회에 복귀한 그 사내가 그 여인의 발자취를 더듬는 내용이다.

그 18년의 기간. 5월 광주로 시작해서 많은 자유와 민주를 향한 투쟁을 거치는 동안 유럽에선 사회주의가 허무하게 무너지는데 절반, 그리고 군사정권이 끝나고 우리나라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일어나 남이 북을, 북이 남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 때까지가 또 대충 절반이다. 그동안 세상은 너무 바뀌었다. 18년 감옥살이를 한 오현우에겐 분명 생소하고 낯선 세상일 것이다. 18년 전 치열한 삶으로 인해 그 세상에서 격리되었던 그는, 이제 한윤희를 통해 지나간 세월 속의 세상을 본다. 빨치산 아버지의 상실과 그 이해에 이르는 먼 여정, 그리고 자신이 잡혀간 후 후배들을 도우며 본 반독재 민주화 과정, 그리고 독일 유학 기간을 통해 본 분단과 통일의 의미를 말이다. 결국 공간적으로는 떨어져 있었던 두 사람의 삶이었지만 시간적으로는 상보적인 한사람의 삶이라고 해야할 관계다. 그리고 다시 남은 것은 한 사람의 삶이다. 바로 그렇게 이 소설은 사람의 삶이 주는 힘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주인공의 허구적 삶일지라도 그럴진대, 하물며 지은이의 삶과 함께 겹쳐지면 더 큰 힘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소설... 그 흐름을 따라가기 조금 난해하다. 상권과 하권의 시점이 너무 갑자기 바뀌며, 마무리에 이르러선 힘이 조금 딸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가 던지는 물음. "새로운 세기에 지난 세기의 암울한 고통과 상실과 좌절을 되새기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아직도 희망은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본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것은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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