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대학 신입생들에게 주었던 한겨레신문의 철지난 옛 기사 하나를 읽어 보자. 제목은 "[책과 사람] 서점 대표들의 한마디." 내용은 몇몇 대학교 앞의 소위 "사회과학 책방" 주인들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의 김동윤 대표의 이야기를 잠깐 인용하고 싶다. "[그날이 오면]에서 지난 시기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단연 <전태일 평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선배들이 선물로 사주거나 새내기 배움터에서 단체선물로 구입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눈에 띄게 그런 현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80년대 밤새 눈물로 책장을 적시게 했던 이 책이 벌써 자신의 생명을 다한 걸까요?"
그렇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2000년 11월 13일은, 바로 그 책의 주인공 전태일의 30주기 기념일이다. 그러나 그 뜻깊은 날에 나는 또 하나의 슬픈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바로 새 천년의 11월을 끝으로 신촌의 사회과학 책방 [오늘의 책]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오늘의 책]이 그저 하나의 작은 책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학과 대학가는 변화하는 시대와 자본의 침식으로 충분히 상업화되었고, 또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임이 분명한 지금, 경쟁력없는 일개 작은 책방의 폐점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더욱이 최근 인터넷 서점들과 시중 서점들과의 첨예한 대결(?)의 양상을 보이는 시대에 말이다.
그러나 주변에 종합대학만 5개가 있는, 그러나 하루 유동인구 33만에, 여관 1백32곳, 카페 2백82곳, 유흥시설 4백8곳인(그나마 이것도 92년 통계이니 지금은 더 많을 것이다) 신촌에, 몇 개 되지도 않는 서점 중의 하나가 [오늘의 책]이었다. 이미 예전에 사라져버린 [알 서점]에 이어 이제 [오늘의 책] 마저 생존을 포기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감상이나 신파적인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본디 [오늘의 책]이 있던 자리는 신촌 전철역과 연세대학을 잇는 연세로의 한가운데였으나 지난 96년 임대료 인상 문제로 문을 닫을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자 주변 대학인들 및 동문들, 그리고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오늘의 책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고 거기에 호응한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현재의 건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 이후 책방을 조합형태로 운영하고 지하의 '열린 공간'을 대학생들이나 작은 소모임들에게 모임 장소로 빌려주는 등, '문화공간'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갖춰 오늘까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가는 젊은이 놀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이 밝혀진 터. 영구불멸할 듯이 보이던 단골 당구장들마저 PC방, 게임방으로 바뀌는 디지털 혁명 속에 일개 작은 서점, 그것도 '골치아픈' 책이나 파는 사회과학 서점들이 살아 남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니었을까.
현재 [오늘의 책] 총무인 윤진희씨는 "내년 건물 재계약을 앞두고 경영 악화로 인해 지난 10월 28일 조합원 총회에서 폐점이 결정되었다"고 폐점의 경위를 설명하고, "다른 대학교 앞의 사회과학 서점들도 모두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태지만 버티고 있는 실정일 것"이라고 현재의 실정을 말한다.
'책의 죽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 시조라는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구텐베르크여 안녕'이라고 일갈한 것이 36년 전이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인쇄 매체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결코 그 세력을 지켜 왔다. 그러므로 일단은 맥루한의 이야기가 틀렸고, '책의 불멸'을 이야기한 움베르토 에코의 손을 들어줘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맥루한에 이은 새로운 도전자가 나왔으니 그는 <디지털이다>의 저자 네그로폰테이다. 그는 2020년이면 종이로 만든 책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생존 경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책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데도 불구하고, 책방들은 이제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많은 선배들의 손때와 발길이 닿았던,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몇 시간 정도는 쉽게 책임져 주었던, 수많은 친구들 또는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때로는 구하기 어려운 금서들의 보급 통로였던, 또한 온갖 '현장'들의 소식지를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소통시켜 주었던, 그 책방들이 말이다. 이제 나는 진한 아쉬움으로, '님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진부한 싯귀를 지난 시대에 바치며 이 기사를 맺고자 한다. 잘 가라, [오늘의 책], 내 십이년지기 친구야...
그 중에서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의 김동윤 대표의 이야기를 잠깐 인용하고 싶다. "[그날이 오면]에서 지난 시기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단연 <전태일 평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선배들이 선물로 사주거나 새내기 배움터에서 단체선물로 구입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눈에 띄게 그런 현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80년대 밤새 눈물로 책장을 적시게 했던 이 책이 벌써 자신의 생명을 다한 걸까요?"
그렇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2000년 11월 13일은, 바로 그 책의 주인공 전태일의 30주기 기념일이다. 그러나 그 뜻깊은 날에 나는 또 하나의 슬픈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바로 새 천년의 11월을 끝으로 신촌의 사회과학 책방 [오늘의 책]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오늘의 책]이 그저 하나의 작은 책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학과 대학가는 변화하는 시대와 자본의 침식으로 충분히 상업화되었고, 또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임이 분명한 지금, 경쟁력없는 일개 작은 책방의 폐점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더욱이 최근 인터넷 서점들과 시중 서점들과의 첨예한 대결(?)의 양상을 보이는 시대에 말이다.
그러나 주변에 종합대학만 5개가 있는, 그러나 하루 유동인구 33만에, 여관 1백32곳, 카페 2백82곳, 유흥시설 4백8곳인(그나마 이것도 92년 통계이니 지금은 더 많을 것이다) 신촌에, 몇 개 되지도 않는 서점 중의 하나가 [오늘의 책]이었다. 이미 예전에 사라져버린 [알 서점]에 이어 이제 [오늘의 책] 마저 생존을 포기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단지 과거에 대한 감상이나 신파적인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본디 [오늘의 책]이 있던 자리는 신촌 전철역과 연세대학을 잇는 연세로의 한가운데였으나 지난 96년 임대료 인상 문제로 문을 닫을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자 주변 대학인들 및 동문들, 그리고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오늘의 책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고 거기에 호응한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현재의 건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 이후 책방을 조합형태로 운영하고 지하의 '열린 공간'을 대학생들이나 작은 소모임들에게 모임 장소로 빌려주는 등, '문화공간'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을 갖춰 오늘까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가는 젊은이 놀이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이 밝혀진 터. 영구불멸할 듯이 보이던 단골 당구장들마저 PC방, 게임방으로 바뀌는 디지털 혁명 속에 일개 작은 서점, 그것도 '골치아픈' 책이나 파는 사회과학 서점들이 살아 남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니었을까.
현재 [오늘의 책] 총무인 윤진희씨는 "내년 건물 재계약을 앞두고 경영 악화로 인해 지난 10월 28일 조합원 총회에서 폐점이 결정되었다"고 폐점의 경위를 설명하고, "다른 대학교 앞의 사회과학 서점들도 모두들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태지만 버티고 있는 실정일 것"이라고 현재의 실정을 말한다.
'책의 죽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 시조라는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구텐베르크여 안녕'이라고 일갈한 것이 36년 전이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인쇄 매체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결코 그 세력을 지켜 왔다. 그러므로 일단은 맥루한의 이야기가 틀렸고, '책의 불멸'을 이야기한 움베르토 에코의 손을 들어줘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맥루한에 이은 새로운 도전자가 나왔으니 그는 <디지털이다>의 저자 네그로폰테이다. 그는 2020년이면 종이로 만든 책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생존 경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책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데도 불구하고, 책방들은 이제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많은 선배들의 손때와 발길이 닿았던,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몇 시간 정도는 쉽게 책임져 주었던, 수많은 친구들 또는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때로는 구하기 어려운 금서들의 보급 통로였던, 또한 온갖 '현장'들의 소식지를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소통시켜 주었던, 그 책방들이 말이다. 이제 나는 진한 아쉬움으로, '님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진부한 싯귀를 지난 시대에 바치며 이 기사를 맺고자 한다. 잘 가라, [오늘의 책], 내 십이년지기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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