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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무엇이 나를 그토록 아프게 만들었나

바이오매니아 2020. 10. 5. 10:41

다사다난이라는 상투적 표현으론 부족한 2020년의 추석연휴, 1박 2일 30시간 동안 <나의 아저씨> 16부작을 정주행했습니다. 2014년 바하마 크루즈에서 5박 6일 동안 밤마다 선실에서 <미생>을 봤었는데, 새로운 기록인 것 같네요. 드라마 안보는 것이 생활신조라는 말도 이제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거 좀 재수 없는 말인 것 같아서요.


최근 가까운 몇 분들이 <나의 아저씨>를 강추해주셨습니다. 처음 드라마가 시작할 때 SNS에서 중년남성-젊은여성 스토리, 키다리아저씨는 필요 없다, 남성 판타지다, 등등 논란이 계속 되었던 것으로 기억해서 왜 그런 드라마를 추천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걸 추천해주신 분들은 여성-남성-젊은층(30대)-중년층(4-50대) 등등 다양했고, 그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다들 좋은 드라마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더군요. 


실은 최근 몇 달 저의 고민은 괜찮은 어른(나이든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한 어른은 불가능할 것같고, 좋은 어른도 힘들테니, 그냥 큰 문제 없는 "괜찮은 어른" 정도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최근 <트루스>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한 댄 래더 (미국 CBS 60 minutes의 진행자)를 보면서 더 "어른"에 대한 생각에 빠졌죠. 그런데 <나의 아저씨>가 좋은 어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드라마라길래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후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아저씨>는 한마디로, 아팠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영화, 책, 또는 드라마를 보고 무슨무슨 앓이를 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좀 그 수위가 높았습니다. SNS에서 욕 먹던 것이 기억나서 그런지 살짝 삐딱한 눈으로 봤는데, 왜 드라마를 마친 뒤 사흘 내내 주제가인 <어른>만 반복해서 듣게 되고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픈 건지, 생각나는 얼굴들도 있구요. 지금 블로그에까지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아픈 이유가 뭔지 정리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아마 <나의 아저씨>가 저를 가장 아프게 만든 부분은 제 주변에 있었을, 이지안(이지은=아이유)과 같은 상황의 사람들을 그냥 지나쳤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내 삶에 허덕거리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성실한 무기징역수"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어쩌면 저를 지나친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사정에 힘들어할 때, 나는 그들에게 눈길을 줄 여유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닌지.


그리고 이지안의 모든 위악적 행동들이 또한 마음아팠습니다. 극중 이지안과 같은 행동을 내 주변 사람들이 한다면, 아마 저는 그들을 멀리했겠죠. 불친절하고 싸가지 없고 악에 받혀있는 사람을 보는 건 괴로우니까요. 그래서 나의 눈과 기준으로만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데 드라마를 통해 "경직된 인간들의 살아온 날들"과 "상처받아서 너무 일찍 커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되니까, 이지안의 모든 대사가 다 너무 슬프더라구요. 마지막에 도청한 것까지 이해한 박동훈(이선균)이 "내가 너를 알아"라는 말이 참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닌데 말입니다. (성경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말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마음 아픈 이유 중 하나는 아이유 이지은씨의 연기력도 한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얼굴만 봐도 살아온 이력이 보이고 마음이 찢어지는 느낌, 거기에 특유의 말투(밥 좀 사주죠, 한 대만 때려 주죠)와 낮은 톤까지,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페르소나>에서 봤을 때하고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군요. 


표정만 봐도 눈물이 나는...


<나의 아저씨>를 1박 2일에 몰아서 보다보니 몇회에 어떤 장면이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뒤로 가면서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 꼭 두 장면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하나는 누군가가 이지안을 한 번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데 박동훈은 아닐 것 같고, 장례식장에서 고물상 할아버지가 안아주실 줄 알았는데 안아주는 장면이 없길래, 너무 지독한 것 아닌가 싶었죠. 하지만 맨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안아봐도 돼요?"라는 장면이...ㅠㅠ


그리고 또 하나 꼭 있었으면 했던 장면은 박동훈이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없어서 좀 서운했어요. 박동훈 아내의 불륜이야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제게 이 드라마에서 가장 불편한(?) 장면은 박동훈과 그 형제들이 너무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결혼하면 "네 부모집을 떠나"는 것이 맞죠. 그런데 맨날(정말로 거의 매일!) 같은 동네 모여서 술 마시고, 조기축구회 가서 축구하고 또 술 마시고 하니 아내가 좀 불쌍하기도 하더라구요. 후계동 사람들의 유사가족관계도 그렇습니다. 거기 모여 맨날 술마시는 아저씨들 가족은 다 잘 지내겠지요? 


하지만 따뜻한 드라마입니다. 이지안이 웃는 장면이 7화 마지막에나 잠깐 나올 정도로 내용은 암울하지만 따뜻한 드라마. 제가 보기엔 작가와 연출자 등등 만든 사람들이 따뜻한 것 같아요. 마지막회에 출연했던 사람들 거의 대부분을 장례식장에 몰아 넣고, 거기서 마지막 촬영을 한 것 아닌가 싶은데, 아무튼 그 많은 조연 및 단역들에게 대사를 하나 하나 주고 얼굴을 비춰준 것까지. 드라마 크레딧 다 끝나고 "여러분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엄청"이라는 자막이 이해되더군요. 


<나의 아저씨> 마지막 화면, "편안함에 이르기까지 파이팅!"


(포스팅 후 찾아보니 이런 일화가 있었네요. 김원석 감독님, 멋진 분인 듯!)


후계동이라는 동네, 그리고 정희네라는 심야식당. 어디 가서 맞고 오면 우르르 달려나오고, 사연 있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말 걸고, 재워 주고, 팔짱 끼어 줄 수 있는 사람들. 누군가에겐 정감 있고 따뜻한 공동체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에서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걸 가장 매력적으로 그렸습니다. 저는 그게 가장 비현실적인 것 같았어요. 제가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비현실적으로 생각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혹시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속으로 그런 공동체를 동경하면서, 남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지레 현실에 저런 게 어딨어, 라고 말해버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욕 먹게 만들었던 "한국판 키다리 아저씨"는 페이크였습니다. 불우한 소녀와 대기업 부장님의 이야기로 비슷한 스토리일 것 같지만 사실 아이가 아저씨를 도와주는 드라마입니다. 아니 서로 도와주는 드라마, 다른 세대와 환경을 이해하자고 주장하는 드라마입니다. 작은 선의가 선의를 불러오는 이야기.


아무튼 간만에 길게 여운이 남는 드라마를 봤습니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은 오랜만이네요. 추천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께, "파이팅!"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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