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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쿠오카> (장률, 2019)의 다섯 가지 단상

바이오매니아 2020. 11. 2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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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역대급으로 영화를 많이 봤는데, 최근 장률 감독의 도시 3부작이라는 <경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그리고 <후쿠오카>를 순서대로 다 봤습니다. <경주>는 남자들 술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생각보다는 별로였고, <군산>은 <경주>보다는 좋았어서 마지막 <후쿠오카>에 대한 기대가 컸죠. 게다가 후쿠오카는 제가 여러번 방문한 도시이기도 하구요. 


영화 후쿠오카 포스터

 

그런데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영화를 보고서는 살짝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단 이야기의 정합성이 흐트러졌고, 또 아재들이 첫사랑 이야기하면서 술마시는 이야기인가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 영화가 계속 머리에 남는 겁니다. 저는 스토리 중심인 사람이라 영화의 정서나 미장센 이런 것보다도 이야기가 중요한데도 말이죠. 그래서 한 이틀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어차피 대본도 명확하지 않게 찍은 영화인데 스토리를 가지고 왈가봘부 할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보자는 것이었죠. 


(이하 스포일러 주의!!!)


1. 이 모든 것은 꿈이다. 


<후쿠오카>는 윤제문의 꿈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제문이든, 해효든, 소담이든, 아니면 모든 사람의 꿈이든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꿈이든, 여럿의 꿈을 이어 붙인 것이든 이 이야기가 꿈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싶은 비논리적 장면들이 다 이해 되죠. 해효네 가게에서 처음 들리는 음악과 마지막 엔딤의 음악이 들국화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이니다. 그리고 해효와 제문이 순이가 사라지던 날 밤에 서로 자기랑 잤다고 하면서 순이가 뭐라고 했냐는 질문에 소담이"날이 밝아오네요."라고 대답하죠. 마치 순이가 그렇게 말한 것처럼. 이런 걸 보면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잠자면서 꿈 속에서 본 이야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2. 긴장 때문에 들리지 않는 이웃 나라의 말


<후쿠오카>에서 가장 말이 안되는 장면은 한국-일본-중국 사람들이 각자 자기 언어로 이야기하고 서로 알아듣고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장률 감독의 정체성 및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바로 윤동주로 표상되는 동아시아 3국의 문제죠. 이 한중일 3국의 언어를 못알아 듣는 건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인 "우린 너무 긴장하고 살아서 그래요."가 답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것은 고도의 정치적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각 나라들 사이의 긴장이 풀려야 서로의 목소리가 잘 들린다는. 


3. 여성들의 연대와 역할


그런데 한중일 3국에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여성입니다. 제문과 해효가 중국인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은 것 같다고 하긴 하지만 다른 언어로 대화를 알아듣는 것은 모두 여성들이죠. 그리고 공원에서 만난 중국인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본 소설책을, 소담은 중국의 금병매를 갖고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소담은 일본 노래를 부르죠. 즉 다른 나라의 문화에 열려 있고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은 전부 여성입니다. 어쩌면 한중일 3국의 소통은 이런 여성들의 연대에서 이뤄진다는 은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티격태격하는 해효와 제문의 가운데에서 소담이 팔장을 끼듯이 남자들 사이의 중재를 하는 역할도 여성일지 모르구요. 


해효와 제문의 사이를 이어주는 소담(?)



4. 윤동주 


<후쿠오카>는 윤동주가 사망한 도시입니다. 그 도시에서 해효는 술집을 운영하는데, 거기에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써 붙여 놓았죠. 그리고 그 술집에서 10년 동안 벙어리 행세를 했던 사람은 말을 다시 하면서 윤동주의 <사랑의 전당>을 읊습니다. 순아, 로 시작하는 <사랑의 전당>은 해효와 제문의 첫사랑 순이가 나오는 시이기도 하지요. 장률 감독은 <군산>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윤동주도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 역시 용정 출신 조선족이었을 뿐"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재중동포이면서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률 감독은 자신의 처지를 윤동주라는 상징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중요 모티프로 등장하는 철탑은 윤동주의 <십자가>에 등장하는 '첨탑'을 연상시키고, 정전이 되어 켠 촛불은 <초 한 대>가 떠오르죠.    


5. 도시 3부작의 연계와 마무리


<경주>에서 베이징대 교수 박해일은 <군산>에 시인으로 다시 등장하고, 후쿠오카 출신 재일교포 아버지를 둔 <군산>의 소담은 <후쿠오카>에 다시 나옵니다. 그리고 <군산>에서 갖고 있었던 인형을 그대로 들고 나와 <군산>에서 불렀던 노래를 <후쿠오카>에서도 부르죠. 이렇게 이 영화들은 서로 연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딱닥 맞지는 않지만요. 이렇게 세 도시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장률 감독은 역사와 삶과 죽음을 다룹니다. 자꾸 술마시는 장면이 많아지면서 홍상수 영화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던데, 홍상수 영화와 다른 점은 사적인 이야기이면서도 그 속에 역사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과잉해석일지도 모르지만요.



물론 논리적이지도 않고 시나리오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찍었다는 영화인데 뭔가 거창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좀 이상할 수 있죠.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고 나면 과거가 있는 사람들이 행복(福)의 언덕(岡)을 걷는 정서만 남는 것 같은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또 뭔가를 생각해보려고 하면 여러가지 주제가 꼬리를 물고 나오는 영화가 <후쿠오카>였죠. 그래서 제게는 처음 볼 때보다 보고 나서 되짚어 생각한 후에 더 좋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건 제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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