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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 마치고 쓰는 마지막 기생충-봉준호 이야기

바이오매니아 2020. 2. 1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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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극장에서 세 번 보고 블로그에도 세번째 쓰는 기생충과 봉준호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글은 여길 참조!)


1. 세상에, 오스카 4관왕이라니! 이런 날도 오는 군요. 국뽕이고 나발이고 일단 기쁩니다. 게다가 작품상과 감독상이라니!!! 


2. 상을 받으면 좋은 영화고, 아니면 그만 못한 영화가 아니지만, 이번 수상은 단순히 한국 영화라서가 아니라 아카데미의 역사를 쓴 수상이어서 더 기뻤던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인종과 젠더에 닫힌 문을 조금씩 열던 아카데미가 이제 외국영화에도 그 문을 좀 열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3. 시상식의 하일라이트는 작품상이었지만 봉준호의 하일라이트는 감독상 수상 소감(보시려면 여기 클릭!)이었다고 봅니다. 그의 수상소감을 들으면서 역시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자기가 제일 빛날 자리를 남에게 내주는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아는 사람. 누가 시상식에서의 Bong's speech를 모아서 유튜브 동영상 만들면 대박이 날 것으로 믿습니다. 그의 뛰어남은 유머러스한 스피치에서도 들어납니다. 


이미 누군가가 모아놓은 Bong's Speech!!!




4. 극장에서 세 번 보았고 심지어 스토리보드북과 각본집도 사서 읽었을 만큼, 기생충은 놀라운 영화였습니다. 비현실적인 우화이면서 현실적인 사회물이고,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이고, 코미디이면서 스릴러물인데 그 양쪽이 이질적이지 않고 짝 달라붙는 느낌!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보기 드물었다는 생각입니다. 


난생 처음 구입한 <기생충>의 스토리북과 각본집!


5. 오랜만에 옛 영화잡지 키노를 펼쳐보았더니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준비하던 시절의 기사가 있더군요. 당시 가제는 <날 보러 와요>(영화의 원작인 연극 제목). 풋풋한 얼굴의 갓 서른 넘은 봉 감독님의 모습이 앳되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를 젊은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죠. 


영화잡지 키노 2001년 3월호

  


6. 2001년에 키노에서 만든 <2001 키노 201 감독>이라는, 201명의 유명영화감독을 소개하는 두 권의 책 맨 끝에 스페셜 리서치로 실린 26명의 신인 감독 인터뷰가 있습니다. 여기에 실린 신인감독들이 나중에 한국영화를 좌지우지하게 되는데(박찬욱, 임상수, 봉준호의 순...),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아래 사진)를 찾아 읽었습니다. 그 중 8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인상적인데, "세상과 당신이 불화한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순간들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그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네요.


"내가 창조한 영화 속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볼 때가 자주 있다. 그러다 문득, 결코 나는 이 사람들의 핵심을 알 수 없다는 절망감에 직면할 때가 있다. 영화를 한다는 건 결국 타인의 삶을 이해해보려는 과정일 것 같다. 따라서 고통은 계속될 것이고."


<2001 키노 201 감독> 2권의 봉준호 감독 인터뷰


7. <기생충>에 대한 여러 논란을 알고 있습니다. 봉준호의 대표작은 기생충이 아니다, 기생충은 가난한 사람을 모욕했다, 서구애들이 기생충 좋아하는 건 가난 페티시, 동양 페티시다, 부루조아 출신 감독이 상상으로 만든 허구세계다, 거대자본 CJ를 등에 업은 계급이야기는 이율배반적이다 등등. 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여기서 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비판에는 별로 공감이 가질 않네요. 영화보다는 영화 외적인 비판이란 생각도 들구요. 상을 받았다고 다 좋은 영화도 아니지만 당신 마음에 안들었다고 별 것 아닌 것도 아니니까요.


8. 학벌 폐지나 국립대 평준화 이야기하면서 자기 자식 서울대 보냈다고 욕하는 것, 특목고 폐지 주장하면서 자기 자식 특목고 보냈다고 욕하는 것, 빈부격차를 비판하면서 부자의 돈으로 영화 만들고 흥행시킨다고 욕하는 것, 뭔가 닮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모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얼마나 순결해야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요.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율배반적입니다. 누구도 못하는 것을 너 혼자 하라는 건 심술이라는 생각입니다.


9. 어찌보면 한국영화 중흥을 이끌었던 90년대 말 데뷔한 감독 세대들이 정점에 올라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영화를 보면 걱정이 많이 앞서기도 하죠. 작가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흥행만을 위해 기획된 영화들, 물량공세에 비해 빈약한 이야기들, 이제 새 세대 감독들이 나와서 이런 우려를 씼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행히 최근 신인 감독들의 작지만 단단한 영화들이 호평을 받았는데, 그 분들이 뒤를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10. 이런 거 누구나 다 아는 사족이지만 노벨상 받는다고 과학이 발전하는 것 아니듯이 로컬 영화제 상 받는다고 한국영화가 좋아지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받으면 괜히 기분은 좋잖아요.^^


11. [진짜 사족] 누가 아래 사진 보여주면서 1969년생 중엔 왜 초대형 스타가 별로 없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봉준호가 있다고 했습니다. 찾아보니 이 때가 2013년...ㅎㅎㅎ


1969년생 연예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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