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비교 논쟁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탕수육 부먹 vs 찍먹, 콩국수에 설탕 vs 소금, 순대에 소금 vs 막장(전라도는 초장?) 같은 것들이죠. 그 중에 떡볶이 밀떡 vs 쌀떡 논쟁도 꽤 치열한 논쟁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제 경험으로는 서울/수도권 사람들은 밀떡, 부산/경남은 쌀떡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서울 신당동 떡볶이의 밀떡, 부산 다리집 떡볶이의 쌀떡이 그 대표를 나타내는 걸까요? 음식 문화적 측면에서는 그럴듯하기도 합니다. 설 명절에 쌀이 많이 나는 남쪽은 쌀로 만든 떡국, 밀이 많이 나는 북쪽은 밀가루피로 만든 만둣국을 먹기도 하죠.
문제는 문화적으로 이런 차이가 있구나, 로 끝나지 않고 어느 게 더 맛있다고 싸우는 경우입니다. 맛있는 게 뭔데요, 라고 물으면 정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마다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답을 얘기하지만 어느 게 맞다고 이야기하기도 애매하죠. 그래서 작년에 학생들이랑 밀떡과 쌀떡을 비교하는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비교란 맛의 비교가 아니라 물성적 특성이고 이 블로그 포스팅은 그 실험 결과입니다. (조금만 더 보완하면 논문으로 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제가 학교를 떠나는 바람에 그냥 여기에 공개할까 합니다. 숫자는 다 빼버렸고 %로 나타낸 것도 블로그 글 쓰면서 대충 계산한 겁니다.)
그 전에 제일 중요한 것. 밀떡과 쌀떡을 비교하려면 같은 크기의 떡으로 비교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체로 밀떡은 가늘고 짧고, 쌀떡은 길고 굵습니다. 그래서 그 자체로 식감이 많이 다르죠. 그래서 저희는 같은 회사에서 만든 직경(13mm)과 길이(70mm)가 같은 밀떡과 쌀떡을 구해서 실험을 했습니다. 일단 떡 구하기가 제일 힘들었고 매우 중요했다고 봅니다.
1) 부착성(adhesiveness): 쌀떡이 밀떡보다 월등히 높음 (3배 정도)
즉 쌀떡이 찐득찐득한 느낌이 더 강합니다. 같은 크기인데도 그런데 가래떡처럼 크면 부착성이 더 강하게 느껴지겠죠. 아마 이건 실험을 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실 겁니다.
2) 씹힘성(Chewiness)과 탄성(springiness): 밀떡이 20-30% 정도 더 높음
씹힘성은 고체 식품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씹는데 필요한 힘을 뜻하고 탄성은 스프링처럼 되돌아오는 정도를 뜻하는데 결국 밀떡이 더 탱탱하고 조직감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도 아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일 것이구요.
3) 염분흡수도: 밀떡이 조금 더 높음
밀떡과 쌀떡을 떡볶이 국물 정도 염도의 소금물에 담궜다가 염분을 얼마나 흡수하나 측정을 해보았는데, 밀떡의 염분 흡수도가 더 높았습니다. 보통 밀떡과 쌀떡 중 소스를 어느 것이 더 많이 흡수하느냐가 가장 큰 쟁점인데 밀떡의 흡수도가 더 높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4) 소스흡수도: (정확한 방법은 아니지만) 밀떡이 더 높음 (특히 국물떡볶이에서)
이게 제일 어려운 실험인데요. 뭔가 정해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떡볶이를 조리한 후 소스가 묻은 떡을 체에 받쳐 놓아서 겉에 묻은 양념을 제거하고 그 다음에 물에 풀어서 떡을 제거하고 늘어난 무게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여러번 측정해서 평균을 내보았습니다. 이 때 떡볶이 소스는 시판 중인 조림떡볶이 소스(국물이 거의 없는 것)와 국물떡볶이 소스 두 종류를 갖고 해보았는데, 조림 떡볶이의 경우엔 소스 흡수도가 거의 비슷하고 밀떡이 아주 살짝(10% 이내) 높았지만 국물 떡볶이의 경우엔 밀떡의 흡수율이 30% 정도 더 높더군요.
5)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기타 특성: 전분용출도와 수분흡수율
전분용출도는 거의 비슷했지만 쌀떡이 좀 더 높았습니다. 쌀 속에 전분이 더 많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되구요. 수분흡수율은 밀떡이 조금 더 높았는데 그건 위의 염분이나 소스 흡수도와도 일맥상통하는 결과겠죠. 아마도 밀떡은 글루텐 때문에 망상구조를 좀 더 잘 이루고, 그 사이 사이에 소스가 들어갈 확률이 높지 않나 추측합니다. 그래서 SEM(전자현미경)을 찍어서 간단한 논문도 한 번 내볼까 했지만...ㅠㅠ
6) 그래서 결론은?
위와 같은 실험 결과로 본다면 떡 자체의 식감은 쌀떡이 더 쫀득(찐득)하고, 밀떡은 더 미끈거리고 탱탱하며, 소스의 흡수는 국물이 많으면 밀떡이 좀 더 흡수를 잘 하지만, 꾸덕한 조림식 떡볶이라면 아주 약간의 차이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구요? 굳이 결론을 내자면 국물이 있게 끓여 먹는 거라면 밀떡볶이가 좀 더 어울릴 수 있고, 하지만 꾸덕하게 조려서 먹는 거라면 큰 차이 없고, 좋아하는 떡의 식감에 따라 그냥 좋아하는 것 드시면 된다는 겁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하시는 분들이 계실 듯 ㅎㅎ)
이상으로 밀떡 vs 쌀떡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요???
참, 끝으로 이 실험을 직접 수행한 4명의 제자들 (유승연/주성운/허준영/박민호)께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다들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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