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를 봤습니다. 뭔가 갸우뚱하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내가, 또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확실히 좀 다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더니 9년의 세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편이 나왔던 2015년에는 선명한 나쁜 놈만 때려 잡으면 속 시원하고 정의가 실현될 것 같았는데, 9년 동안 우리 사회가 정신 없이 바뀌었기에 영화도 바뀐 것 같더군요. 류승완 감독은 속편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보여주려는 것 같았고, 그래서 영화가 혼란스럽고 마냥 즐기기엔 부담스러운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누가 봐도 나쁜 놈과, 나쁜 놈을 비호하는 나쁜 놈과, 나쁜 놈을 처단하는 나쁜 놈과, 나쁜 놈을 처단하는 나쁜 놈으로 먹고 사는 나쁜 놈들 사이에서, 나쁜 놈을 처단하라고 욕하는 나도 혹시 나쁜 놈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복잡해지는 영화였습니다.
따마침 TV에서 <베테랑> 1편을 해주길래 다시 보았습니다. 두 편을 역순으로 연달아 보니 <베테랑2>는 9년의 세월의 변화에 대한 감독의 반성을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 반성이 <베테랑>을 관람했던 1,300만 관객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 같고, 그 반성을 효과적으로 했는지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지만, 저는 그 반성이 나름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단 첫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미스 봉' 호칭의 변화입니다. 전작 <베테랑>은 호평 일색이었지만 욕을 먹은 한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봉윤주 형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 봉"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마무리하는 호쾌한 발차기의 매력적인 인물이었지만, '미스 봉'이라는 호칭은 더 이상 사용하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테랑2에서는 항상 봉형사로 부릅니다. 지난 9년간의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성평등과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겠죠.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주의!!!
하지만 이야기 측면에서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빌런이 누구인가' 같습니다. 1편의 빌런이 누구나 공분할 수 있는 악덕 재벌이라면 2편의 빌런은 바로 히어로 서도철의 흑화된 버전인 경찰 박선우(정해인)이니까요.
1편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악을 때려잡는 서도철 형사도 마지막까지 참는 것 하나는 상대를 먼저 때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조태오와의 마지막 결투(?)에서도 일단 매를 맞음으로써 정당성을 얻고난 후 싸움을 하죠. 그런데 <베테랑2>에서는 거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서도철도 박선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류승완 감독은 1편의 대성공으로 정의를 수행하는 공권력에 대한 기대를 가진 관객들에게 잘못된 공권력을 의심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네요.
<베테랑2>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권력과 매체의 관계입니다. 그 중심인물이 바로 명성일보 전기자이자 정의부장TV의 박승환이라는 인물인데, <베테랑2>에서는 거의 메인 빌런급으로 격상되었죠. (누군가 기시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정의부장은 1편에서 서도철 형사를 도와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신진그룹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언론을 통제하니까, 서도철은 박승환 기자에게 단독 기사거리를 슬쩍 흘려주면서 자신이 작업할 수 있게 증권가 찌라시 등의 정보를 달라고 딜을 합니다. 물론 박기자의 기사는 데스크의 검열에 걸려서 나가지 못하지만, 결국 초조해진 조태오가 악수를 둬 버리고 그게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죠.
2015년에는 이런 식으로 "정의를 위해서" 수사기관과 언론이 적당이 거래를 하는 것에 별 문제의식이 없었죠. 그런데 이제는 수사기관과 언론의 악어와 악어새 역할이 지탄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기성언론의 힘이 빠지고 유튜브라는 매체가 힘을 얻으면서 과대 포장되는 여론과 가짜뉴스들이 더욱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죠. 아마 이런 상황에 대한 반성을 베테랑2에 담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중에 대한 시선도 좀 바뀌었습니다. 1편에서 대중들은 사건과는 떨어져 있어도 열심히 카메라로 범죄현장을 찍는 목격자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2편에서는 모두가 주체인 척 의견을 내고 소통하는 것 같지만 돈벌이 목적의 유튜버들 카메라에 휘둘리는 객체가 되어버렸습니다. 실은 그들이 깔아놓은 판에서 놀고 있는 것이죠. 어쩌면 일부(?) 관람객들의 <베테랑2>에 대한 불편함은 여기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폭 장면이 스토리와 안어울리고 표현도 너무 심하다는 의견도 있던데 저는 폭력에 대한 반성을 서도철 아들 에피소드에서 넣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들은 때리면서 크는 거다, 맞고만 다니지 마라, 때려서 껨값 무는 건 참아도 맞아서 병원비 내는 건 못참는다, 이런 말도 이제는 하면 안되는 세상이 되었죠. 학폭이 얼마나 오랜 상처를 남기는지 다들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던 시대에서 이젠 돈만 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시대, "네 빽은 하나님 빽이냐" 라며 배후를 상관 않고 범죄자를 잡던 시대에서 형기 마친 범죄자를 보호해야 하는 시대 등등 이 시대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쾌한 사이다 액션 코미디였던 1편에 우울한 다크 히어로 누와르가 덧입혀지면서 약간의 부조화가 일어났다는 생각도 들고요.
개인적으로는 범죄 장면 등 조금 과하다 싶은 장면들이 많은 것이 좀 아쉬웠는데 이게 세상이 과해졌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빌런의 서사가 없다는 비판도 있던데 쿠키 영상을 보니 아마 그건 3편에서 해결해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아무튼 저는 <베테랑2>는 재미보다 흥미있게 본 영화였고, 나중에 뒤돌아보면 의미가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2015년의 "그냥 '미안합니다'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커질 수가 있지?"라는 대사가 지금 와서 보면 심상치 않게 들리는 것처럼요.
'블로그 주인장 이야기 > 책 영화 음악 그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토리 세 번 보고 알게 된 것들 (6) | 2024.09.05 |
---|---|
빅토리, 우리 인생을 응원하는 영화 (+ 염지영, 박세완) (3) | 2024.08.26 |
교토국제고 고시엔 결승 진출과 일본 고교 운동부 시스템 (0) | 2024.08.22 |
패터슨, 인생을 예술로 만드는 아~하의 순간 (0) | 2024.08.08 |
시대의 어른, 김민기를 추모하며 (3) | 2024.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