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름 고시엔 (夏の甲子園)에서 한국계 고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결승에 진출한 것이 큰 화제입니다. 한국에서의 뉴스는 한국어 교가가 NHK를 통해 울려퍼졌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저는 저런 문화가 계속 지속되는 것이 더 흥미롭더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9PlKInF1GKE
여름 고시엔 결승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토너먼트에서 전승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 토너먼트의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지역예선을 통과해야 하죠. 올해 교토지역예선에서는 73개의 팀이 맞붙었고, 교토국제고는 거기서 1위를 한 것입니다.
그래도 교토는 73개 팀이니까 좀 나은 편입니다. 도쿄와 같이 학교가 많은 곳은 동부와 서부로 나눠서 예선을 치루는데 올해 동부에는 129개 팀이 참가하고, 서부에는 123개 팀이 참가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니 왜 모든 학교가 여름 고시엔에 출전하는 것만으로 감격하고, 경기에서 지면 울면서 흙을 퍼가는지 이해할 수 있죠. (물론 지역예선 대진표에 보면 표시가 있는 것처럼 야구 명문고들이 있고 그들끼리는 초반에 붙지 않도록 시드 배정을 하며, 주로 본선에 올라가는 학교들도 그 학교들입니다. 그래도 쉽진 않지만요.)
이런 고교 스포츠 시스템은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잘 아는 만화 <슬램덩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슬램덩크는 4년 넘게 연재됐지만 전체 스토리는 겨우 4개월간의 이야기입니다.
슬램덩크 31권인가 만화 중에 20권 정도까지가 가나가와현 지역대회 예선이고(다만 본선진출은 2팀), 전국대회 본선 경기도 딱 두경기를 하고 만화가 끝나죠. 클라이막스는 전국최강 산왕공고와의, 결승이 아닌 2차전이구요. (세번째 경기는 패배했다는 언급만 나왔던 듯?)
올해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작을 틈틈이 찾아보고 있는데 그 중에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라는 흥미로운 영화가 있었습니다.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바라보는 영화인데 야구부, 배구부, 배드민턴부, 오케스트라부, 영화부, 심지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애들은 "귀가부"라고 합니다. 그만큼 부서활동이 활발한 것이죠.
저는 교토국제고 뉴스를 보면서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에서 몇 씬 등장하지 않는 야구부 주장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키리시마가 아니라 그의 친구이자 전직 야구부원 히로키인데 히로키는 3학년인 주장에게 묻습니다.
히로키: 주장 선배는 3학년인데 왜 은퇴를 안하시나요?
주장: 신인 드래프트 끝날 때까지는 해보고 싶어서
슬램덩크에서 채치수도 전국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하고, 변덕규도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던가 그랬었죠. 이게 일본 고교 아마추어 운동부의 시스템이죠. 하지만 이렇게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서 야구팬이 되고, 농구팬이 되어 저변을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 저변이 저렇게 무지막지한(?) 토너먼트 대회를 지금까지 끌고 온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변하지 않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고, 그래서 일본이 정체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말이죠.
우리나라도 학교 운동부를 소위 엘리트 스포츠로 육성할 것이냐 공부와 병행시켜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죠. 제가 맨날 김재박이 한국화장품에서 타격 7관왕 했을 때부터 야구팬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모든 고교야구팀이 출전하는 봉황기 대회 출전팀이 50개 내외였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와 일본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도 공부와 운동은 양립하는 개념이 아니고, 이 모든 것이 입시와 관련이 있어서 시스템을 함부로 바꾸기 쉽지 않겠지만, 학창시절에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보겠다고 입시제도 바꿨다가 한 때는 온갖 시간 때우기 봉사 활동들이 많아지기도 했지만요. 그냥 아주 간단히 말해서, 학생들이 좀 뛰기도 하고 공부도 하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잡설이 길었고 금요일 결승에서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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