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다.
김민기를 아는가. 그는 내 청소년기의 우상이었으며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중학교 2학년 음악시간에 내 친구가 그의 노래 <친구>를 부르다 선생님께 한쪽다리를 들고 의자들고 앞으로 나란히하는 高難易度의 벌을 받은 후 부터 그는 나에게 알려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음악평론가인 김창남 선생이 엮은, 한울에서 나온 <김민기>라는 책을 보고 그의 노래를 거의 다 마스터해 버렸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미대생이었던 그가 해질녁 어촌의 고깃배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자 그 옆에 있던 여공 하나가 "모두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쏘아 붙이자 스스로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일화는 아직도 내 가슴 속 깊이 남아있다.
그러나 김민기의 위대함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 적어도 김민기는 70년대의 우상이며 신화였다. 하지만 모든 우상은 깨어지게 마련.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예를 보아 왔던가. 한 때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의 화려한(?) 변신과 변절(뭐, 꼭 그렇게 보는 시각이 항상 옳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 말이다. 89년, 그러니까 군사정권에서 민간정부로의 이양기(6공 시절)에 모든 노래들이 해금되기 시작했고 그의 노래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길에서 파는 나쁜 음질의 <금지곡>테이프가 아니라 라디오에서 듣는 김민기 특유의 낮은 음성. 아, 그것은 전율이었다.
그는 충분히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숨어버렸다. 공명심이 없는 사람일까. 아니면 신화가 깨어지는 두려움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비참한 시대가 한 평범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일까. 그러나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학전이라는 소극장을 만들었고 <개똥이>, <지하철 1호선>등, 조금 다른(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충실한 삶을살고 있었다. <지하철 1호선>을 보고 가장 기뻤던 사실은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지하철 1호선>은 참 좋은, 그리고 여운이 남는 뮤지컬이었다. 10명의 배우가 돌아가며 수십 명의 역할을 하면서도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극의 흐름을 무리없이 끌고 갔다. 게다가 원작이 독일의 것임에도 마치 우리극인 것처럼 각색해낸 능력도 높이 살 일이다. 지하철에 얽힌 온갖 인간들의 모습속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 비관적이지도, 그렇다고 전혀 희망적이지도 않다. 그냥 우리의 모습이다. 보통 뮤지컬하면 <아가씨와 건달들>이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을 떠올리고 요즘에는 탈렌트들이 나오는 <넌센스>등이 인기를 끌지만 이런 공연이 몇 년간이나 장기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자랑스럽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김지하 작시의 <금관의 예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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