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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토토로

바이오매니아 1999. 3. 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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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토토로>를 수차례 보다.

이 아니메는 우리 부부의 일본어 공부용 교재이자 아침 저녁 밥상의 반찬이자, 왜냐하면 밥먹을 때 틀어놓으니까,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 작품 중에서 내가 제일 즐기는 작품이다.

재작년인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란 감독의 영화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평론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용어가  <착한 영화>라는 말이었다. <내 남자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보여준 그의 영화는 한마디로 "달랐다." 기존에 우리 입맛에 맞았던 영화,  우리가 보아온 영화하고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영화적 기법만이 아니라 내용 자체가 자본의 침입으로  삭막해져버린  도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재미 (라는 용어를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있는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은 그런 연유가 아닐까 싶다.

미야자끼 감독. 일본어 공부를 핑계삼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극장판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 <모노노케 희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 <마녀의 택급편>, <루팡3세-카리오스트로 성>을 모두 보았다(이는 전적으로  내 충실한 후배 양기영군의 덕이다). 위에 언급한 그의 영화 중 단 두편만이 소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바로 <이웃의 토토로>와 <모
노노케 희메>.

엄마가 병원에 있어서 병원 근처의 시골로 이사온 두 자매.  11살 짜리 언니는 엄마의 노릇을 하고 동생은 아직 어리지만 떼를 쓰거나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겁없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아빠. 절대 야단치지 않고, 전직 유치원교사 출신인 우리 아내의 말에 빌리자면 아이들을 시켜먹을 줄 아는 아빠. 새로 이사온 사람들의 집 정리를 도와주는 이웃들. 괜히 시큰둥하게 굴어도 비올때 우산을 빌려줄 줄 아는 옆집 남자아이. 수업시간에 불쑥 찾아온  동생과 같이 수업을  받게 해주는 선생님과 반 친구들. 동생이 없어지자 다 같이 발 벗고 나서는 이웃들... 감히 이런 세상을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주변이 허전하고 관계가 단절된채 우리가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 동안 국적 불명의 아니메만을 만들어와서  일본인들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일본의 5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만들었다는 이 1시간 30분짜리 만화영화는 정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경림이의 표현). 하지만 보면 볼 수록 이상한 것은 토토로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니메라는데  도대체 일본 사회는  토토로의 배경과 전혀 닮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30년  정도의 세월에 사회가 이렇게 황폐해 질 수 있었을까.  다시 <모노노케 희메>로 회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토토로>와 <모노노케 희메>는 짝 영화 (conjugated movie;  내가 만든 용어. 함부로 사용하지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이니까. <토토로>는 즐겁고 <모노노케 희메>는 우울하다. <토토로>는 현대고 <모노노케 희메>는 원시다. <토토로>에서 숲의 원령은 인간이 도움을 요청하는 존재고 <모노노케 희메>에서 원령은 인간의 사냥감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절대 악인은 없으며 인간과 문명의 문제를 '원령'이라는 가장 일본적이면서  반문명적인 대상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토토로나 시시가미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사가 하나도 없다. 그들은 대상이다. 문제를  일으키고 줄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이다. 따라서 얼핏보면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등의 단어가 연상되지만 그 속에는 무엇보다도 "휴머니즘"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다. 이 영화들의 매력은  이러한 이중 구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계속되는 노파심 때문이지만 이런 영화들을 그냥 정령숭배 사상등으로 묶어서 비판해버려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JMS 때문에 조금 시끄러웠던 것 같다.  예전에 91년인가 92년도였던가. 서기연 친구들이 정말 목숨걸다시피하고 싸웠을 때, 그때도 "JMS 걔 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는 무얼 했는가"라는 자기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를 <토토로>를 보면서 알게 된다. 수 없이 반복해서 보아도 계속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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