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잘 안그러는데 오늘 방송 맨마지막에 어느분이 문자로 "딸기는 과일인가요, 채소인가요?"를 물어오셨습니다. 사실 별 생각없이 있다가 당황해서 과일 아닌가, 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다시 찾아보니 딸기는 채소라는 주장이 많군요. 좀 더 찾아보니 딸기는 accessory fruit, 우리말로 하면 위과 (僞果)라고도 한다고 하고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엄밀하게는 과일도 채소도 아니랍니다. (저는 전공이 식물학과는 거리가 있어서 채소라는 주장도 많이 있던데 진위는 잘 모르겠습니다.)
source : wikipedia (vegetable)
그러고보니 과일과 채소는 보통 나무에서 열리냐(과일) 아니냐(채소), 다년생이냐(과일) 1년생이냐(채소)로 나눈다고 대충만 알고 있었는데, 좀 더 식물학적으로 정확한 차이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의는 다 제각각이더군요. 다만 과일(fruit)의 식물학적인 정의는 씨를 가지고 있는 식물의 씨방(ovary)이 자라서 된 가식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과일은 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론을 뛰어 넘는 법. 정확한 식물학적인 분류가 언제나 현실에서의 쓰임새를 다 나타내진 못하죠. 그 일례로 우리가 베리류(berries)라고 부르는 것들(딸기, 크랜베리, 래즈베리 등등)도 사실 식물학적으로 쓰인다기보다는 그냥 작은 열매들을 뜻합니다. 실제 식물학적으로 베리류는 "하나의" 씨방에서 만들어진 과일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물학적인 정의에 따르면 토마토, 감, 바나나도 (식물학적으로는) 베리류에 속하는데 우리가 바나나, 감, 토마토를 베리라고 부르진 않지요. 게다가 토마토는 과일도 아니고 채소라잖아요.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인데 그럼 대체 사람들은 왜 "과일이냐 채소냐"를 따지기 시작했을까요? 거기에는 역사적인 사건(Nix v. Hedden)이 하나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마 토마토가 과일이 아니라 채소라는 것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왜 다른 과일은 놔두고 토마토에 대해서만 그렇게 사람들이 잘 아느냐하면 100년도 더 전에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토마토가 채소다, 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죠. 1880년대 후반 미국에서 과일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채소에만 관세를 부과하는 법이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식물이 과일이냐 채소냐에 따라 세금에 차이가 생기게 되었고 토마토가 과일이냐, 채소냐의 법정공방이 시작된 것이죠.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토마토가 저녁 식사에는 나오지만 후식으로는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토마토를 채소로 판결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주로 후식으로 먹으면 과일, 아니면 채소라는 것이죠. 식물학적인 정의나 사람들의 통념과와는 사실 상당히 동떨어진 판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사람들은 세금때문에 과일이냐 채소냐를 따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무슨 학문적 정의를 위해 따지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이는 과일이고 수박은 채소야, 뭐 이런 식의 이야기를 가끔 하는데 그게 별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통상적인 개념으로서의 과일과 채소, 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과일과 채소는 조금 다르다,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죠. 그리고 이렇게 (통상적으로는) 과일이면서 식물학적으로는 채소인 과일을 과채류라고 부르기도 하죠.
분류라는 주제에서 조금 더 나가보면 사실 "분류"라고 하는 학문은 이렇듯 복잡하고 때로는 모호합니다. 특히 형태학적 분류와 분자유전학을 이용한 계통학적 분류는 잘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죠.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 블로그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극한미생물 아키아(고세균)입니다. 사실 극한미생물 = 아키아는 틀린 정의이고 아키아 = 세균이 아니기 때문에 고세균이라는 말도 사실 정확한 단어라고 보기 힘들죠. (하버드 동물학자 언스트 마이어와 칼 우즈의 논쟁?)
하지만 또한 과학은 정확한 정의로부터 시작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정의가 중요하지요.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와 의학에서의 용어의 차이 (예를 들면 간장과 간)는 얼마나 많은 혼선을 줍니까. 또한 이러한 부정확한 정의가 대중적으로 잘못 이해되어 엉뚱하게 사용되기도 하구요. 하지만 실제 학문분야의 논문에서는 과일이냐 채소냐 같은 단어는 잘 사용되지 않고 딸기도 그냥 strawberry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학명 (Fragaria)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사실 이게 학문적인 논쟁도 아니라고 봅니다.
source: http://www.nlm.nih.gov/medlineplus/ency/imagepages/19816.htm
때문에 과일이냐 채소냐의 논쟁은 그렇게 생산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세금을 따로 매기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과일이든 채소든 맛있는 것으로 많이 드시면 좋겠죠.
(혹시 식물학에 정통하신 분은 틀린 부분이 있는지 확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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