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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정은정, 한티재) 속의 숨은 목소리들

바이오매니아 2021. 10. 1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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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느냐는 말과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그사이 어디쯤에서 헤매는 이들과 함께 이 글을 나누고 싶다."

 

그알싫(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농축산인"으로 잘 알려진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선생님의 새 책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읽었습니다. 마음에 남고 울림이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책 맨 첫머리에 가족의 생일을 과일이나 먹거리로 비유한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책에 쏙 빠져서 하루 만에 다 읽었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정은정, 한티재)

책을 읽다보니 이전에 본 것 같은 부분도 있어서 아마 그간 쓰셨던 칼럼과 새로운 글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만(물론 제 추측입니다!), 제가 칼럼 모음집 같은 책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평소 목소리를 듣기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줘서 그랬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에는 폐지줍는 노인, 식당 자영업자, 결식아동, 학교급식노동자, 배달노동자, 농촌의 이주노동자, 특성화고 학생, 산재희생자 등등 신문 사회면에도 등장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방역을 위해 목욕탕에 가지 말라는 주장과 농촌에서 존엄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목욕탕이라는 것을 알았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사라져가지만 농촌에는 더 없이 귀한 관공서가 우체국이라는 것을 알았고, 장터가 먼 농촌에선 사오다 깨지기 쉽고 더운 여름에 쉬기 쉬운 두부가 귀한 식품이라는 것을 알았고, 세상 음식은 대체로 여성의 손에서 만들어지지만 큰 인기와 돈을 버는 건 남성 셰프들인 이유가 셰프의 세계가 칼과 불을 다뤄 폭압적이며 위계질서가 강해서 그런 거라지만, 수십자루의 칼과 큰 솥과 커다란 가스불을 다루는 학교 급식 현장에는 백퍼센트 여성조리사만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프리카 돼지열병 막는다고 멧돼지 죽이지 말라는 "생태적으로 매우 옳은 주장"과 농산물 뿐만 아니라 농촌 여성에게까지 위협적인 멧돼지 피해에 대해서 알았고, 잡초가 아니라 야생초라는 주장과 '작물에 빨대 꽂은 조폭'이 잡초라는 농민의 주장에 대해서 알았고, 소년원에서 끼니당 겨우 2천원으로 먹는 소년범들과 그 정도도 고마운 줄 알라는 사람들의 주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이 그 어느쪽 주장도 함부로 말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을 차분히 이야기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사회가 극단적이 되어 간다며 우려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극단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시대에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의 뒷표지

인상적이었던 책 속의 몇몇 구절을 나눠보면 

"결핍 앞에서 인정사정은 없다."
"농촌에는 먹을 것이 지천일 것 같지만 이는 도시인들의 착각이다."
"내 아이 밥을 12년이나 챙겨주는사람들은 누구인지 모르고 산다."
"학교급식 발전의 수훈이 있다면 단연코 학교급식 조리 노동자들에게 있다."
"생태적으로 매우 옳은 분석도 농촌에서는 한갓진 말로 들릴 뿐이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기도 하다."
"남의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오늘만 사는 사람들 (배달노동자)"
"삼풍백화점 자리에 작은 추모비 하나 세우지 못하고 사람들 발길이 닿기 어려운 궁벽한 곳으로 쫓겨 났다.(중략)용산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 건물 자리에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대구 중앙로에도 추념의 표식이 없다. 팔공산으로 쫓겨 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라는 격에 맞지 않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한참 전부터 한국 먹거리를 책임지는 이들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다."

정은정 선생님은 자신을 글과 말로 쌀과 반찬을 구하는 "글로생활자"이자 "말로생활자"라고 하셨는데, 부디 이 책이 많이 많이 팔려서 더 좋은 글을 많이 쓰시는 "글로생활자"가 되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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