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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어른, 김민기를 추모하며

바이오매니아 2024. 7. 22. 19:39

 
얼마전 제 주변 소셜 미디어에 김민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넘쳤습니다. SBS에서 방영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다큐멘터리 3부작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 잊고 있었던 이름입니다. 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기도 하죠. 
 

김민기 (김창남 엮음, 한울)

 
찾아보니 김민기 선생님에 대해서 26년 전에 쓴 글이 이 블로그에도 있더군요. 아마도 98년도에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와서 쓴 글인 것 같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었습니다. "그는 내 청소년기의 우상이었으며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었다고. 제가 평생 누군가를 우상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쩌면 그는 유일한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김민기라는 인물은 정말 전무후무한 사람입니다. 군사독재시절의 희생자이면서 신화적 존재였으나, 그 모든 추앙을 뿌리친 사람.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조용히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자기 일만 묵묵히 한 사람. 어떻게든 나를 알아달라고 하는 세상에서, 그것도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예술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보고 나서 저와 아내가 이구동성으로 "예수가 생각나지 않아?"라고 말한 건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SBS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제가 초판 1쇄를 가지고 있는 아끼고 자랑하는 책 <김민기>(김창남, 한울)에 따르면 김민기 선생님은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전북 익산에서 무려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피난 중에 인민군에 피살되어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연희전문 시절 한국인학생 차별에 항의해 제적당한 어머님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으면 자랐다고 하지요. 서울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셋째 누나가 그를 음악의 세계로 이끈 첫 스승이라고 하고, 그 누나가 고교 입학 선물로 사준 클래식 기타가 첫 악기였다고 합니다. 
 

고교시절 우울한 나를 달래줬던 책 <김민기>

 
 
김민기 선생님은 1969년 대학에 입학한 후 고교시절 친구와 도비두(도깨비 두마리)라는 듀엣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1970년에 양희은을 만났으며 (하지만 본인의 인터뷰에선 1969년이라고 말함, KBS 1990년도 인터뷰), 1971년에 첫 음반을 내게 되는데 그게 바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김민기 1집>입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김지하를 만나고 점점 한국사의 격랑 속에 휩쓸려 들어가는데, 그 이후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궁금하시면 SBS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보시면 됩니다.)
 

김민기 1집

 
위에 언급한 저 블로그 글에도 썼지만 "미대생이었던 그가 해질녁 어촌의 고깃배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자 그 옆에 있던 여공 하나가 "모두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쏘아 붙이자 스스로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일화"는 평생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다짐 중 하나입니다. 나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민감함을 잃지 않고 살겠다는 다짐이죠. '욕망해도 괜찮'은 이 시대에 뭐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냥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김민기와 한 여공과의 일화 (위의 책)

 


솔직히 학전이 없어진다고 했을 때 너무 안타까워서 김민기와 관련 있는 명망가들이 한 1-2억씩만 갹출하고 일반인들도 참여하게 만들어서 "김민기 문화재단" 같은 것 만들어 학전 건물을 사버리는 건 안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말은 쉽고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렇게 그냥 그를 보내고 그의 흔적까지 없어지니 마음이 너무 허전하네요. 

 

"선한 영향력과 겸손". 김민기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두 단어입니다. 돈자랑이 플렉스가 되고, 없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서 "자소설"을 쓰는 시대에,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좇지 않고, 사람을 키우고 약자를 돌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열어 나간 김민기 선생님께 감사의 큰 절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김민기 선생님

 

김민기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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